1박2일 회사 야유회를 마치고 인천으로 가는길에 들러보는 전등사
고등학교 시절 가보고 그 이후는 기억에 없으니 34년이 지났다
시간이 이리도 빠르게 지났나~~~
다른동료들은 인천에서 한잔 더 한다며 갔고 오리는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는 동료 두사람과 전등사로
간다 ..아침에 꽃게탕에 밥먹고 또 해장하러간다니 대단한 주력(酒力)이다 ^^
점심시간이 다되어서 찿은 전등사는 관람객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서 걷는 기분이 좋다
비가 내린 후 의 상쾌함
싱그런 잎새들 ...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중창기문(重創記文)에는 381년(소수림왕 11)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절로, 1266년(원종 7)에 중창된 이래 3, 4차례의 중수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현존하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확실하게 단정짓기는 어렵다.
전등사대웅전(조선 중기), 보물 제178호,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眞宗寺)라고 했으나 1282년(충렬왕 8) 충렬왕의 비인 정화공주가 승려 인기(印奇)를 중국 송나라에 보내 대장경을 가져오게 하고, 이 대장경과 함께 옥등(玉燈)을 이 절에 헌납한 후로 전등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이 옥등은 전하지 않고 있다. 1337(충숙왕 6), 1341년(충혜왕 2)에 각각 중수되었다고 하나 당시 전등사의 역사를 알려주는 기록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1605(선조 38), 1614년(광해군 6)에 일어난 2차례의 화재로 절의 건물들은 완전히 소실되었고, 그 다음해 4월부터 지경(志敬)이 중심이 되어 재건하기 시작해 7년 만인 1621년 2월에 완성되었다. 1678년(숙종 4)에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가 건립되면서 왕조실록을 지키는 사찰로 왕실의 보호 아래에 있게 되었다. 이 사고장본(史庫藏本)은 1909년 서울로 옮겨져 조선총독부 분실(分室)에 보관되었다가 지금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707년에는 유수(留守) 황흠(黃欽)이 사각을 고쳐 짓고, 별관을 또 지어 취향당(翠香堂)이라 하고 보사권봉소(譜史權奉所)로 정했다. 그뒤에도 1749, 1839, 1855, 1871, 1876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근래까지 대규모의 중수 불사가 이루어졌다. 이때 대조루(對潮樓)를 비롯해 양곡을 보관하는 정족창(鼎足倉)·석량고(石糧庫) 등의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현재와 같은 대규모의 사찰이 되었다. 1912년 일제강점기 때 강화·개성 등 6개군에 있는 34개 사찰을 관리하는 조선불교 30본산의 하나로 승격되었다. 또한 이 절의 뒤편에 있는 정족산의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하여 신성시되는 점이 주목된다. 경내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원건축인 대웅전(보물 제178호)·약사전(보물 제179호)을 비롯해 명부전·삼성각·향로각·적묵당·강설당·범종각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중국 북송시대의 범종(보물 제393호)과 전등사의 말사인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된 조선시대의 법화경판(1544)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 경판은 6·25전쟁 때 파주에 있었던 모부대에서 1매를 가져가 현재 104매만 남아 있다. 그밖에 거대한 청동수조(靑銅水槽)와 대웅전에서 사용했던 작은 옥등 등이 있다.
백과사전에서 퍼왔어요...
32년만에 찿아와보는 전등사
81년도에 왔었으니 기억나는곳이 없다
계절따라서 기억되는것도 다른데 이리 오랜세월이 흘렀으니 기억이 나지않는다
암튼 전등사의 첫 인상이 좋다
템플스테이는 2002년 FIFA 월드컵이 열렸을 때 외국인 관람객들의 숙박시설 부족으로 시작됐다.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들로부터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있다. 한국불교는 1,700여 년의 역사 속에서 대승불교권에서는 유일하게 간화선 수행의 전통이 광범위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해마다 안거 때면 2,500여 스님들이 전국의 100여 개 사찰로 100일 동안 안거에 들어간다.
이런 수행의 전통은 사찰의 구조와 생활 전반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쳐 한국의 사찰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심신의 안정과 평화를 느끼게 된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문화월드컵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내외국인에게 산문을 개방하고 산사에 머물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한일 월드컵이 치러지는 2002년 5월 31일부터 6월 30일까지 30여 일 동안 1천 명의 외국인과 1만 명의 내국인이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게 된다. 총 11,000명에 달하는 참가자의 수도 성과였지만, 이 기간 동안 CNN, 뉴욕타임즈, BBC, NHK 등 전 세계 언론에서 템플스테이를 집중 보도하면서 한국불교와 템플스테이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일 월드컵이 끝난 후 대한불교조계종은 템플스테이를 상설화할 것을 발표하는(2002. 7. 2)한편,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을 발족해서(2002. 7. 16) 지속적인 템플스테이 운영을 표방했다. 정부에서도 상설화에 따른 예산 지원을 약속하면서 첫해 31곳이었던 운영사찰은 현재 110곳으로 늘어났다.
템플스테이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자리잡았다. 2009년 OECD 관광보고서에서는 전 세계 가장 성공적인 5개 문화콘텐츠 가운데 하나로 템플스테이를 선정하기도 했으며, 2011년 5월 29일에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02년 이후 10년 동안 70만 명이 템플스테이를 체험했다고 알려졌다.
탬플스테이
산행을 하면서 사찰등에서 자주 보아온 단어 이고 대충 뜻은 들어서 알고있지만 정확하게 무슨뜻이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지못했다
해서 백과사전을 검색해서 퍼왔다 ^^
저 느티나무는 높이가 21미터에 이르고 둘레는 3.7미터 나이는 약 212년
여기서 느티나무에 대해 잠시 알아보면 이 나무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뭇과의 낙엽활엽 교목으로 규목(槻木)이라고도 하는데 산기슭이나 골짜기 또는 마을 부근의 흙이 깊고 그늘진 땅에서 잘 자라고 높이는 26m, 지름이 3m 정도이며 굵은 가지가 갈라지고, 나무껍질은 회백색이고 늙은 나무에서는 비늘처럼 떨어짐.
전등사 주변에 소나무들도 멋지지만 경내의 느티나무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전등사에는 꽃들이 많다
꽃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어서일까
경내에 많은 꽃들을 심어놓아서 보기가 참 좋았다는~~
비 내린 후 의 깨끗함
그리고 아름다운 꽃
빨간 튜울립 도 심어놓앗고...
튜울립 너머에서 담소하는 스님들...
무슨 담소를 나누는걸까
아주 진지한 대화가 오간다
하얀 라일락
좀 보기드문 라일락 이다
보통은 보라색인데...
명자꽃
돌담 밑에 수선화도 이쁘고...
34년만에 찿은 전등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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